江华岛旅行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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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7, 2016 23:10 汉语
三圣阁是对山神祭祀的空间。听说在印度, 尼泊尔, 中国, 等等的佛教国家也找不到这样的三圣阁。


连不相信山神的存在的韩国人也知道山神是什么样的存在。因为很多韩国传统故事上山神是主角。 (看这张照片, 我想起来了中国的太上老君。 太上老君也是带着白色的胡子吧。我猜测以前朝鲜时代人画山神的时候, 肯定受到了中国图片的影响。)


鼎足山史库是朝鲜时代保存朝鲜王朝的重要文件。 朝鲜王朝很重视保存文件, 朝鲜前期运用“4大史库”, 朝鲜后期运用“5大史库”。在4间史库一起保存一样的文件, 如果在3间史库发生事故,把另外一间史库的文件再打印的话, 朝鲜王朝永远保存国家重要文件。 我去鼎足山史库的时候, 关门了。不可以参观。


现在那个鼎足山史库里一个文件也没有。 包括朝鲜王朝实录, 很多重要文件在国立首尔大学博物馆保存的。 我也知道参观鼎足山史库不是那么有用的事, 但是进不了鼎足山史库的内部, 我有点不开心。


药师殿是药师如来的佛堂, 他治疗人民的病患。

中国朋友们, 我写的内容肯定让你们生气, 但是别发我的脾气。 照片上的铁钟是从中国来的。 1097年, 北宋时代, 在河南崇明寺庙制造的。 中国的铁钟呢, 怎么在韩国江华岛来呢?趁第二次大战的混乱, 日本帝国势力偷了这个铁钟, 把铁钟放了朝鲜半岛的“富平武器仓”。 他们要把铁钟熔制造武器。 本来日本帝国势力抢夺中国宝物的时候,他们的目的是偷中国文明的伟大文化遗产。 所以他们抢夺的东西在博物馆保存的。 但是第二次大战时候, 日本经济情况太不好, 为了制造枪, 甚至偷了朝鲜老百姓的铁勺子。 所以第二次大战不早点结束的话, 这个铁钟肯定变成了日本军的枪。 但是走好运, 1945年日本军队输了。 他们把铁钟放在这儿, 就回去了日本。 韩国政府把这个铁钟搬运了在这儿传灯寺。 从1945年到1992年, 韩国和中国没有外交关系。 韩国政府没有办法送给中国这个铁钟。

那中国朋友们可以这样问 :“东明, 你的话也有道理。 但是1992年后韩国政府有送铁钟的机会, 但是还没有这样消息。 怎么过来的呢? ”我也有点不好意思。。。我有几个借口。 第一, 照片上的铁钟落后太深刻, 跨国搬运的话, 对铁钟肯定损害。 第二, 韩国是很贫穷的国家, 没有这样的宝物。 如果中国朋友们真愿意收到这个铁钟的话, 代替这个铁钟, 来取韩国的宋仲基, 金秀贤, 李敏镐吧。(在韩国帅哥太多, 让我这样的丑男人受屈辱, 他们肯定是韩国社会问题。)


삼성각은 산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는 공간입니다. 인도나 네팔, 중국 등의 불교국가에서도 이러한 삼성각은 찾아 보기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산신령의 존재를 믿지 않는 한국인 조차 산신령이 어떤 존재인지는 압니다. 왜냐하면 많은 한국의 전통 이야기에 산신령이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진을 보고, 저는 중국의 태상노군을 떠올렸습니다. 태상노군도 흰 색의 수염을 가지고 있지요. 제가 추측하기에는 옛날 조선시대 사람들은 산신령을 그릴 때, 틀림없이 중국 그림의 영향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정족산 사고는 조선시대에 조선왕조의 중요 문건을 보관하던 곳입니다. 조선왕조는 문서 보관을 아주 중요시했습니다. 조선시기 전기에는 ‘4대 서고’를, 후기에는 ‘5대 서고’를 운용했습니다. 4개의 서고에는 같은 문서를 함께 보관했습니다. 만약 3개의 사고에서 사고가 난다면, 나머지 한 곳의 사고에서 보관하던 문서를 다시 인쇄하게 합니다. (그렇게 하면), 조선왕조는 영원히 국가의 중요한 문서들을 보존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정족산 사고를 갔을 때는, 문이 닫혀 있어서, 둘러 볼 수가 없었습니다.


현재 저 정족산 사고에는 한 개의 문서도 없습니다. 조선왕조 실록을 포함해서, 많은 중요 문서들이 국립서울대학교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저도 정족산 사고를 관람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를 알고 있습니다만, 정족산 사고 내부에 들어가지 못하자, 저는 좀 슬펐습니다.


약사전은 약사여래의 법당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합니다.

중국 친구분들, 제가 쓰는 내용은 틀림없이 여러분을 화나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에게 화를 내지는 말아 주세요. 사진상에 철로 만들어진 종은 중국에서 온 것입니다. 1097년 북송 시대 때, 하남성의 숭명사에서 제조한 것입니다. 중국의 철종이 어째서 한국 강화도에 온 것일까요? 세계제2차대전의 혼란기를 틈타, 일본제국주의세력은 이 철종을 훔쳤습니다. 종을 조선반도의 인천의 ‘부평무기창’에 놓았습니다. 그들은 철종을 녹여서 무기를 제조하려고 했습니다. 본래 일본제국주의 세력이 중국의 보물을 강탈할 때는, 그들의 목적은 중국 문명의 위대한 유산을 훔치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훔친 물건들을 박물관에 보관했었습니다. 하지만 제2차대전 때는, 일본의 경제 상황이 아주 나빠서, 총을 제조하기 위해서, 심지어 조선 백성의 숟가락까지도 뺏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2차대전이 일찍 끝나지 않았다면, 이 철종은 틀림없이 일본군의 총으로 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운 좋게도, 1945년 일본군은 졌습니다. 그들은 철종을 여기에 놓고서, 바로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한국정부는 철종을 바로 여기 전등사로 운반해 놓았습니다. 1945년에서 1992년까지, 한국과 중국은 외교관계가 없었습니다. 한국정부는 이 종을 중국 정부에 줄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중국친구들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동명씨, 당신의 말도 일리가 있군요. 하지만 1992년 이후 한국 정부는 종을 보낼 기회가 있었어요. 하지만 아직 그러한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이지요?” 저는 좀 미안합니다. 몇 가지 변명을 하겠습니다. 첫째, 사진상의 철종은 낙후가 아주 심각하게 되었습니다. 국경을 넘어서 운반을 한다면, 철종에 틀림없이 손상이 있을 것입니다. 둘째, 한국은 아주 가난한 나라입니다. 이러한 보물들이 없습니다. 만약 중국 친구들이 정말 이 철종을 받기를 원하신다면, 이 철종 대신, 오셔서 한국의 송중기나 김수현, 이민호를 가지러 오세요. (한국에는 잘 생긴 남성들이 너무 많아서, 저처럼 못 생긴 남성들이 굴욕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들은 분명히 한국 사회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