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华岛旅行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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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6, 2016 11:29 汉语
江华道离我家大约70公里远, 开车去要一个半小时。 江华岛是首尔的一道大门。 我以前说过仁川市是首尔的一道大门, 那我怎么把江华岛称呼首尔的大门呢? 原来是这样, 首尔和仁川之间的铁路《京仁线》是1899年建设的, 首尔和仁川之间的公路《京仁高速道路》是1968年建设的, 还有仁川机场是2001年建设的。 简单地说, 20世纪以前的首尔的关门不是仁川, 而是江华岛。 在江华岛名胜古迹很多, 被叫”文化遗产的宝库”。

圣公会的另外名字是”安立甘宗”, “英国国教会”。照片上的建筑是”江华岛温水里圣公会教堂”。 1906年从英国来的传教士建设的。 但是这间教堂跟一般的教堂不太一样, 因为教堂的外观好像传统的韩式房屋一样。 那时英国传教士很尊重朝鲜的传统, 虽然圣公会是从西方来的, 但是建设教堂的话,应该据朝鲜的传统建设。 中国朋友们觉得那张照片有点奇怪吧, 教堂的大门好像凸子一样。 这样的凸子大门呢, 叫“솟을대문 Sot-Eoul-Dae-Mun” 。朝鲜时代,这种大门是富有和高地位的象征, 因为大门这样高的话, 马和轿子容易出去。

这间教堂的历史上的意义很高。 因为有约100年的历史, 而且东方的建筑和西方宗教的融合, 这样的特点在另外的地方找的很难。



三郎城呢, 又被叫鼎足山城。 1866年法国军队侵略朝鲜, 朝鲜军队和法国军队在这儿打架。朝鲜军队赢了, 但是不可以叫胜利, 因为朝鲜的损害太厉害。 那时朝鲜朝廷在江华岛保存了很多朝鲜王朝的重要文件。 趁战斗的混乱, 法军偷了很多宝物。 那时法国的最有名的战利品是“朝鲜王朝实录仪轨”的。 约150年间, 这个“仪轨”在法国国立图书馆的书库隐藏的。 一位韩国留学生为了发现“仪轨”, 故意在那间图书馆打工, 她努力找“仪轨”在哪儿。 终于1975年她找到了, 然后对韩国的新闻告诉了这件事。 但是法国政府矢口否认仪轨的存在, 而且她被法国图书馆炒鱿鱼了。 韩国政府一直要求仪轨回来韩国, 但是法国政府不听韩国政府的要求。 2011年法国政府承认仪轨回来韩国, 但是法国政府这样说 : “这些书我们的,我们法国借给你们, 如果我们愿意的话, 你们韩国一定要还给我们。” 法国是文明的国家, 但是对文化遗产方面他们很自私, 简直是厚脸皮吧。 (我听说过法国军队也在北京圆明园偷了很多东西。野蛮的洋鬼子! )



三郎城附近的路很漂亮, 散步的话, 很开心!


传灯寺是江华岛的代表的寺庙。 看看摩尼車吧, 打磨尼车转起来的话, 好像有念佛教经典的效果。 在韩国佛教上这样的风俗不是普遍的, 我听说过这些磨尼车在西装容易找到的。(在韩国有的人把磨尼车叫轮藏台)

我去传灯寺的时候, 有的人改修传灯寺, 不能看寺庙的漂亮的样子, 有点可惜。



강화도는 저희 집에서 약 70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차로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강화도는 서울의 대문입니다. 저는 예전에 인천이 서울의 대문이라고 말씀 드린 적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어째서 강화도를 서울의 대문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원래는 이렇습니다. 서울과 인천간의 철도 ‘경인선’인 놓인 것은 1899년입니다. 서울과 인천간의 도로인 ‘경인고속도로’가 놓인 것은 1968년입니다. 그리고 인천공항은 2001년에 세워졌습니다. 간단히 말해, 20세기 이전에 서울의 관문은 인천이 아니라, 바로 강화도였습니다. 강화도는 명승고적이 많아서, ‘문화유적의 보물 창고’라 불립니다.

성공회의 다른 이름은 ‘영국국교회’입니다. 사진 상의 건축물은 ‘강화도 온수리 성공회 교당’입니다. 1906년 영국에서 온 선교사가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일반적인 교회들과 조금 다릅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외관이 한옥과 같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영국 선교사는 조선의 전통을 존중했습니다. 비록 성공회가 서양에서 오기는 했지만, 교회당을 건축한다면, 마땅히 조선의 전통에 따라 건설해야 했습니다. 중국인 친구분들은 저 사진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실 것입니다. 교회의 대문의 모양이 꼭 ‘凸’자 모양으로 생겼으니까요. 이러한 凸자 대문은요, 솟을대문이라고 불립니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대문이 부유함과 높은 지위의 상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대문이 이렇게 높을 경우 말과 가마가 쉽게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의 역사적인 의미는 아주 높습니다. 왜냐하면 약 100년의 역사가 있고, 거기에 동양과 서양의 종교가 융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다른 곳에서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삼랑성은, 정족산성이라고도 불립니다. 1866년 프랑스 군대가 조선을 침략합니다. 조선군대와 프랑스 군대가 여기에서 싸웠습니다. 조선군대가 이겼지만, 승리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의 손해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조선의 조성은 강화도에 조선왕조의 중요한 문건들을 많이 보관했습니다. 전투의 혼란을 틈타, 프랑스 군대는 많은 보물을 훔쳤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전리품은 ‘조선왕조실록 의궤’입니다. 약 150여년간, 이 ‘의궤’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 서고에 숨어 있었습니다. 한국인 유학생 한 명이 이 의궤를 발견하기 위해, 고의로 저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녀는 열심히 의궤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 다녔습니다. 마침내 1975년 그녀는 찾아 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언론사에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의궤의 존재를 완전히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프랑스 도서관에서 해고당하였습니다. 한국정부는 계속 의궤가 한국에 돌아오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한국 정부의 요구를 듣지 않았습니다. 2011년 프랑스 정부는 의궤가 한국에 돌아오도록 승인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책들은 우리 것이다. 우리 프랑스가 너희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원한다면, 너희 한국은 곡 이 책을 돌려 주어야 한다.” 프랑스는 문명국가입니다. 그러나 문화유산에 있어서 만큼은 그들은 아주 이기적입니다. 그야말로 철면피입니다. (저는 프랑스 군대가 북경 원명원에서도 많은 것을 훔쳤다고 들었습니다. 야만적인 양코배기들!)



삼랑성 부근의 길은 아주 예쁩니다. 산보를 하면 참 즐겁습니다.


전등사는 강화도의 대표적인 사찰입니다. 마니차를 보시지요. 마니차를 쳐서 돌리면, 불교 경전을 읽는 듯 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한국 불교에서 이러한 풍습은 그렇게 보편적이지는 않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이러한 마니차는 중국 서장 지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한국의 어떤 사람들은 마니차를 윤장대라고 부릅니다)


제가 전등사에 갔을 때, 전등사는 수리중이었습니다. 사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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